관광지명 | 융건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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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안녕동, 융건릉) |
전화번호 | 031-222-0142 |
이용시간 | 09:00 ~ 18: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어른(내국인,외국인) : 1,000원 / 만24세 이하,어린이 : 무료 |
홈페이지주소 | http://royaltombs.cha.go.kr/html/HtmlPage.do?pg=/new/html/portal_01_13_01.jsp&mn=RT_01_13 |
수원과 화성은 정조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곳이 수원화성과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융릉과 정조의 무덤이 있는 건능이다.
조선 후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는 정약용과 함께 뛰어난 우리나라 성곽건축기술력을 보여준 수원화성을 만들었고,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무덤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지금의 융릉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자신의 무덤을 아버지 능 옆에 마련하고 건릉이라 이름하였다.
화성시에는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능 중 정조의 효심이 가득 담겨 있는 융릉과 정조의 무덤인 건릉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주역이었던 정조는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은 조선시대 비극의 주인공 사도세자의 아들로 한평생 정치개혁과 아버지에 대한 회한으로 점철했던 임금이다.
정조는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생부인 사도세자의 무덤을 경기도 화성군 송산리 화산 자락에 모시고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를 중창했다.
또한 정조 자신의 무덤은 아버지 능 옆에 마련하고 건릉이라고 이름하였다.
융릉에는 사도세자와 함께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도 함께 묻혀 있다.
입구에 도착하면 융건릉임을 알려주는 조형물이 반겨주고 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들어오면 조선왕릉임을 알려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융건릉 안에는 곳곳에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융릉과 건릉은 매표소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누어져 있다. 어느 쪽을 먼저 들려도 상관없다.
매표소에서 융릉에 이르는 오솔길은 머리속을 맑게 씻어내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산책로로 유명하다.
산책로 오른쪽에는 제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재실이 자리하고 있다.
능 입구에 재실이 있다. 재실 안으로 들어가면 약 100년 된 향나무가 있고 화성융릉개비자나무가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504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비자나무는 보통 3미터 이내로 낮게 자란다.
그러나 이 나무는 키가 4미터에 이르고 줄기 둘레는 80센티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개비자나무로 융릉 재실을 조성할 때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 주위에 원형으로 돌을 둘러 세우고 복토를 해 놓았다
융건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증능 중에서도 숲길이 가장 아름다워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서울 근교에서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나들이하기 좋은 명소로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융건릉은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화성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얕은 구릉으로 이어진 화산 자락에 능역까지 푸근한 솔숲 사이로 난 흙길을 소풍하듯 걸어가면 융건릉을 만날 수 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참나무 숲을 걷다 보면 건릉에 다다른다.
건릉 앞에 서면 가장 먼저 홍살문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의 경계를 의미하는 홍살문에서 '홍살'은 '붉은 창살' 이라는 뜻이다.
홍살문을 지나면 제물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냈던 정자각을 볼 수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을 참도라고 하는데 융릉과 마찬가지로 정자각까지 참도 좌우 양측에 ‘박석’을 깔아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능이라고 한다.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에는 훗날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함께 묻혀 있다.
다른 왕릉들은 문인석의 모자가 사모관대인데 융릉은 금관을 하고 있고 이마 위에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폐세자가 되어 죽임을 당했으나, 추존왕릉으로 추승한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효심이 느껴진다.
지금의 ‘융릉’ 자리는 160여년 전 남인이었던 윤선도가 효종의 능침으로 지목한 곳이어서 조선 최대 길지로 알려진 바가 있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피어오르는 형국으로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상당한 식견이 있었던 정조가 아버지를 길지에 모시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다.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가 합장된 융릉과 정조와 효의황후 김씨가 합장된 건릉을 합쳐 융건릉이라고 부른다.
융릉 비각에는 2개의 표석이 있다.
하나는 ‘현릉원’을 설명하는 정조 때 만들어진 표석이고, 하나는 융릉을 설명하는 표석으로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듯하다.
1899년 장헌세자를 장조의 황제로 추존한 후 이듬해 현릉원 표석 옆에 세운표석이라고 한다.
또한 융릉은 다른 능과 다르게 정자각이 능침과 일직선이 아니라 약간 비껴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효심 깊은 정조가 능을 조성할 때 뒤주에 갇혀 묵숨을 잃은 아버지가 정자각이 앞에 있으면 답답할 것을 우려한 것이라고 한다.
건릉에서 입구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곤신지가 있다.
곤신지는 1789년 융릉이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이듬해에 조성된 원형의 연못이다.
왕릉에서 보기 드문 원형 연못으로 융릉의 형국은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인 반룡농주형으로 정조는 이런 지세를 알고
융릉에서 내려다보이는 오른쪽 용의 머리 부근에 여의주 모양을 한 원형의 연못을 파게 하였다.
이 또한 아버지를 연모했던 정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융건릉은 길이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산책하기 안성맞춤이다.
또한 곳곳에 벤치가 조성되어 있어서 산책하며 잠시 쉬어 갈 수 있는데, 융건릉 전체를 돌아보아도 한시간 내외면 충분하다.
산책하고 나오면 먼지를 털 수 있는 곳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도심 속에서 조선왕릉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융건릉은 시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짙푸른 소나무의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융건릉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효성스러운 왕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융릉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아버지 장조와 그의 비인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과 정조와 효의왕후의 무덤이 있는 건릉을 한번에 살펴볼 수 있다.
융건릉은 정조의 효심이 가득 담긴 잘 가꿔진 능역에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다.
융건릉은 대중교통으로 버스 이용 시 향남환승터미널 근처 향남환승터미널(37-287) 정류장에서 직행 9802번 버스 탑승 후 수영오거리.방송통신대입구 정류장에서
일반 720-2, H65번 버스로 환승한 후 융건릉사거리 정류장에 하차하면 도보 4분 거리이다.
주차는 융건릉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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